제목없음


홈페이지 소개: “완성은 없다. 우리의 창작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라는 저희 연구소만의 철학을 반영되어 한 편의 습작 노트처럼 제작되었습니다. 

본 홈페이지 프로그램은 한번 업로드되면 내용이 고정되는 정형화된 플랫폼 방식이 아니라 연구소 관계자들께서 필요하면 언제나 쉽고 빨리 자유롭게 업로드하고 편집할 수 있는 

맞춤형 웹에디터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관계로 보시는 분들께서는 다소 정제되지 않은 내용으로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 오/탈자, 무디자인, 탈 레이아웃 주의! ) 

저희 연구소 아카이브를 비교적 보기 쉽게 주제별로 묶어서 정리하여 포스팅한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jeskifolder) 버전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 ( 영문식 표기; Jeski Social Campaign ) :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이름 그대로 광고기획자 이제석이 2009년 설립한 광고 연구기관이다.

연구소의 약 90% 이상의 업무를 공익광고 (Public Service Ad) 제작에 비중을 두고 있다.

영리 추구를 위한 상업광고보다는 비영리 엔지오 단체들이나 정부 / 국가기관들과 함께

환경, 기아, 자살, 마약, 폭력 문제 등과 같은 인류가 처한 범국가적 문제에 대한

공공 프로젝트들을 국/내외에서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쉽고, 단순한 '시각 언어'를 통해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는 소통 방식으로

기성 광고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혁신적이고 기발한 제작기법들을 연구하여

광고를 대중화, 이슈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Jeski Social Campaign :


Since its brand philosophy, more than 90% of Jeski Social Campaign’s work has focused on creating public service advertisements (PSAs).


Instead of aiming for commercial profit, Jeski Social Campaign works with non-profit organizations, government agencies,


and public institutions to lead social campaigns in Korea and around the world.


These projects focus on serious global problems such as climate change, hunger, suicide, drug addiction, and violence.


At the heart of Jeski's work is a belief in the power of simple, clear visual messages that can speak to people beyond language and cultural boundaries.


By using creative and unique production methods not commonly found in traditional advertising,


Jeski Social Campaign has shown how advertising can do more than sell—it can inform, inspire, and even spark important social convers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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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 광고연구소 창립자에 대한 짧은 소개:


광고 기획자 이제석 李濟錫 : (영문식 이름Jeski ) 


광고인 이제석은 KBS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실제 모델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광고제인 프랑스 칸 광고제, 뉴욕 원쇼 페스티벌, 영국 D&AD, 호주 영건즈(YOUNG GUNS) 등 국제 메이저 공모전에서 본상을 대거 수상했으며, 단일 출품작으로 복수 광고제를 동시에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당시 최연소인 20대 나이에 달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 언론에서는 그를 ‘광고천재’라 불렀습니다.
2009년, 이제석은 한국에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현재까지 국내외 정부기관 및 시민단체와 협업해 500건이 넘는(국내 최고 수준) 공공 및 공익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표현적 독창성으로 주목받으며 국내 공익광고 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소에서 발표한 광고들이 뉴스에 자주 보도되며, 그 성과는 대한민국 초·중·고 미술 교과서 및 국정 교과서, 참고서 50여 종에 수록될 만큼 교육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가 집필한 『광고천재 이제석』은 교보문고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서울대학교 지원자 추천도서 100선에도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예일대학교 미술대학 MFA(석사) 과정에서 연구한 실험적 이미지 표현 기법에 관한 학문적 이론 위에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실무 경험을 더해, 최근에는 ‘실물 중심의 브랜드 개발’과‘비전통 광고매체의 활용’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공익·공공 영역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창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A brief introduction to Jeski (Jeseok Yi), founder of Jeski Social Campaign:

Jeseok Yi, an advertising professional, is the real-life inspiration behind the KBS (Kreean National Broadcastng System)drama "Ad Genius Lee Tae-baek." He was the first Korean to win top awards at some of the world's most prestigious advertising festivals, including the Cannes Lions in France, the One Show in New York, D&AD in the UK, and Young Guns in Australia. He also achieved the rare "Grand Slam" in advertising—winning major awards from multiple international festivals with a single campaign—all while still in his twenties. At the time, the Korean media nicknamed him "Ad Genius."

Lee Je-seok later founded the Jeseok Lee Ad Research Lab in Seoul S.Korea. Since 2009, the lab has worked on over 500 public interest and government-related campaigns—one of the highest records in the country. These projects were done in partnership with government agencies, NGOs, and civic groups. His creative and unique approach helped open a new area in Korea's P.S.A(public service advertising) industry . Unlike most ad agencies, his lab often gains attention in the news media, and many of its works have been published in over 50 Korean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textbooks, as well as national education materials.

His book "Ad Genius jeseo yi" is a steady seller at 'Kyobo Bookstore (the largetst book seller network in korea) and is listed among the top 100 recommended books for Seoul National University applicants. Combining theory from his MFA studies at Yale University in 2011 with hands-on experience from the advertising field, he has developed new ideas such as "brand development centered on physical experiences" and "using non-traditional media for advertising." These ideas are now being used to solve social issues through creative projects in collaboration with engineering and tech organizations.






*이제석 온라인 광고아카이브:

1. 기록과 해설: blog.naver.com/jeskifolder
2. 일상의 창작: instagram.com/jeskifolder1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이제석 광고아카이브 web #23 이제석 인터뷰언론/보도자료 모 https://blog.naver.com/jeskifolder/223410235530











제석 광고연구소가 대한민국 사회에 미친 영향력( 2024년 4월작성 )




'유행’이 아닌‘장르’를 만듭니다.


흙수저 지방대 출신 광고인 이제석의 성공 스토리는, KBS 드라마로 제작되고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로 출간될 정도로 한국 사회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습니다.“한국이 버린 광고천재”, “지방대 루저의 성공신화”, “자수성가의 아이콘”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의 등장은, 특히 출신 학교, 집안, 고향 등 ‘배경’ 중심으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의 취업 시장에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강렬한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많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인사 채용 부서들은 학력 중심의 평가 방식을 과감히 줄이고, 출신 학교나 지역을 반영하지 않는 새로운 인사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또한 이제석이라는 이름은 광고·홍보 계열을 지원하는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의 자기소개서에 단골처럼 등장하며, 광고인이라는 직업과 광고업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끌어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그의 영향으로 한때 국내에 해외 광고 공모전과 광고 유학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성공은 지방대 출신과 ‘흙수저’ 크리에이터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큽니다.

그가 뉴욕에서 잘나가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설립한 광고 전문기관 **‘이제석 광고연구소’(2009년 한국지부 출범)**는, 대한민국 광고업계의 흐름을 바꾼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당시 연구소가 국내에서 발표한 광고들은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섰다고 평가될 만큼, 이미지 중심의 독창적인 표현 방식과 비전통 매체를 활용한 파격적인 기법으로 주목받았습니다.실제로 20년 가까이 지난 작업물임에도 여전히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며, 인터넷 커뮤니티와 해외 SNS에서는 해당 광고를 직접 본 적 없는 젊은 세대와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계속 회자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작업한 광고의 의뢰처가 경찰청, 국정원, 국가보훈처 등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국가기관이었다는 점은, 실험적이고 과감한 표현의 충격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 참고: 이제석 광고블로그: 도둑 잡는 광고 시리즈 :https://blog.naver.com/jeskifolder/222384167680 )

당시 한국 광고업계는 주로 연예인을 앞세운 스타 중심 광고나, 읽기 위주의 헤드라인 광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제석의 등장은 이러한 기존의 ‘한국식 광고 패러다임’에 종지부를 찍고,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광고 생태계의 탄생을 이끄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감히 도전조차 어려웠던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광고제에서, 한 작품으로 다수의 본상을 휩쓴 ‘그랜드 슬램’ 기록을 대한민국의 한 무명 청년이 20대의 나이에 달성함으로써, 국내 광고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사건은 이후 국내 대형 광고회사들과 대기업 인하우스 에이전시들이 앞다투어 해외 광고 공모전에 도전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는 곧 대한민국 광고업계의 표현력과 수준을 국제적인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가장 큰 공로는 단연 ‘공익광고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소가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공익광고는 거의 전적으로 공공기관인 공익광고협의회(코바코)를 통해서만 제작되었고, 일반 기업이 아닌 정부기관이나 NGO, 시민단체 등은 대중의 뇌리에 남을 만한 창의적이거나 도발적인 광고 캠페인을 시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죽은 시장”이라며 말렸던 공익광고 분야에 이제석은 과감히 뛰어들었고, 연구소 출범 당시부터 ‘공익광고 전문회사’라는 독자적 정체성을 고수하며 오직 공익광고에만 집중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주목할 만한 여러 성과들을 만들어냈고, ‘수익이 되든 말든’이라는 정신으로 지켜낸 브랜드 철학은 지금까지도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당시 이제석이 방송과 언론에서 자주 언급했던 “재능기부, 프로보노” 같은 단어들은 한동안 사회 전반에 대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광고회사가 공익활동을 위해 무료로 광고를 제작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지만, 연구소의 활약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대형 광고사들과 기업 홍보실에서도 서둘러 사회공헌 홍보팀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러한 문화가 광고계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광고인이 외쳐온 ‘광고인의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은 더 큰 메아리가 되어 기성 및 예비 광고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한때는 상상도 못했던 ‘공익광고인이 되고 싶다’는 청소년들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중·고등학생 시절, 이제석의 자서전을 읽고 광고 전공을 선택했던 이들 중 다수가 현재는 각종 주요 기관의 홍보담당자가 되어 연구소에 광고를 의뢰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석의 광고 제작 방식과 삶의 철학은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했던 ‘물질 중심, 양적 성장’ 위주의 성공 공식에 균열을 내며, “가치와 질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그는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공익광고의 사회적 파급력을 대중의 눈앞에서 실증했고, 그로 인해 이전에는 존재조차 미미했던 새로운 공익광고 및 공공홍보 영역이 본격적으로 확장되고 활성화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일시적인 문화 트렌드를 넘어서, <공익광고·공공홍보·공공디자인>은 이제 하나의 성숙한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현재의 공공 홍보시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큰 규모의 산업으로 자리잡았고, 이 시기적 전환은 이제석 광고연구소의 등장 및 활약과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2024년 기준 언론진흥재단을 통해 집행된 정부 광고만 해도 약 1천억 원에 달하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각종 수치는 그 몇 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 참고: 이제석 광고블로그 관공서 홍보전쟁 : https://blog.naver.com/jeskifolder/222256194636 )

공익광고 시장에 처음 진입했을 당시에는 사업 유지조차 어려워 폐업 위기까지 몰렸던 적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영업사원 한 명 없이도 연구소를 찾아온 광고주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이제석이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이 좋아서 왔습니다.”“세상에 발표된 광고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팬인지 광고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열정적인 방문자들 덕분에, 창업 후 평균 3년 내 폐업률이 높은 광고업계에서 무려 2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 최초, 유일의 공익광고 전문회사”**라는 명성도 잃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이상과 현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창립 15주년, 마치 1년을 10년처럼 보낸 이 시간 동안 ‘기발함’, ‘비전통 매체’, ‘공익광고’라는 이제석 광고연구소의 대표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설고 특이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최초’로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는 잠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보편화된 기준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후배와 동료, 팬들이 그가 만든 광고 세계관을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해 온 결과,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시작한 광고 스타일은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창립자 이제석은 여전히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광고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장르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 시청각 참고 자료 --------------------------------------------------------------



1. 인터뷰/언론보도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OzeKziIH8xE5swmc8II4SCJjJ3jMYNbf






2. 메이킹 필름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OzeKziIH8xH5cwGPJ6K8lQIBV-y8MedX






1. 이제석 광고강의 (EBS e클라스)




2. 이제석 최근 활동 (feat.소방방재청)




3. 이제석 최근 인터뷰 (개똥철학/ ICconTV)




4. 연구소 초기 활동상 언론보도 모음








이제석 자전적 광고에세이 검색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008264












KBS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 소개영상 검색 =>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ad+genius+lee+tae+baek











*사진: 창립자 이제석의 한국에서의 대학 시절 성적표. 4년간 학점 4.5점 만점에 4.468점을 받아 미술대학 (당시 12개학과) 전체 수석을 차지했던 졸업 성적표

(참고: 'P0'는 의무 수강 과목에 한해 '패스/Pass'를 의미 / 당시 수업은 상대평가 시스템으로 성적 우수의 의미인 A학점은 수강생 비율에 비례해서 제한적으로 주어졌다.) 




*여담: 이제석은 미술대학생 시절, 수업 중 다음 시간까지 해야 할 학교 과제를 듣는 순간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작업에 착수해서 빈 강의실에서 과제를 다 끝내고도 모자라서

다음날 다시 한번 보완 수정작업을 한 다음에 일주일 뒤에 있을 수업까지 시간이 될때마다 계속해서 업데이트해서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접근방식으로 결과물들을 만들어서

어떤게 무엇보다 왜 더 좋은지 비교하는 수준의 종합적인 결과물들을 과제로 제출했다. 과제 한편이 마치 한편의 연구 논문에 준하는 수준이었고,

이것은 한 개인이 만든 과제물이 학과 전체에서 제출한 과제물보다 그 양과 질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는데, 한 개인의 회사가 제출한 광고 기획서가 전체 공모전이나 입찰 제안평가에 출품된 전체 회사들의 총 출품작들 모두와 비교하더라도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위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제석 온라인 광고아카이브:

1. 기록과 해설: blog.naver.com/jeskifolder
2. 일상의 창작: instagram.com/jeskifold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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